세금 소멸시효
예전에는 사람을 죽인 살인죄에도 공소시효라는 것이 존재했습니다. 살인죄에 적용되던 공소시효는 15년에서 25년으로 늘어났고, 지금은 공소시효 자체가 사라졌죠.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인 채권에도 소멸 시효가 있습니다. 돈을 빌려주고 아무런 행위나 조치 없이 방치하면 10년 경과 시 채권도 사라집니다.
이와 같이 체납된 세금에도 소멸시효가 존재하며 국세 징수법, 지방세 징수법에 의거하여 5억원 이상의 세금에 대하여 10년의 소멸시효가 유지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세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10년이 경과되면 체납된 세금에 대하여 납부 의무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이는, 돈이 없어서 세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사람을 너무 지나치게 독촉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의미에서 제정된 법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빌런의 존재가 문제가 됩니다.
소멸시효의 완성
5억원 이상의 체납액은 10년, 그 외의 체납액은 5년만 버티면 소멸시효가 완성되고, 체납된 세금의 납세의무가 사라집니다. 문장이 매우 달콤하게 읽히죠. 하지만 소멸시효의 완성은 쉽지 않습니다.
고액의 세금을 상습적으로 체납하는 납세자를 타겟으로 집중해 조사하는 38 세금징수과가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2억원 이상의 세금에 대해서는 집중감시를 하며 수사를 하는 국세청의 전문화된 팀입니다.
또한 실제 체납 기간에 은닉된 재산이나 소득이 발견되면 납부고지, 독촉, 교부청구, 압류가 다시 행해지고, 소멸시효는 초기화 되어버립니다.
외국에 6개월 이상 체류하면 소멸시효도 함께 정지되기도 합니다.
체납 소멸시효가 6개월 이하로 남게 되는 대상은 집중 감시 대상이 되어 38 세금징수과에서 두세 번에 걸쳐 꼼꼼하게 다시 한번 조사를 합니다.
체납자는 자신의 명의로 아무런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실제로 버텨내서 체납 소멸시효를 완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조세포탈범
체납 세액이 1000억원에 이르는 전 신동아 그룹의 회장, 최모 씨의 집에 서울시 38세금징수과에서 자택 급습 작전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최모 씨의 거주지에서 발견된 것은 현금 2,687만원과 고가의 미술품이었죠.
현금과 미술품에 즉시 압류 절차가 시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최모 씨의 아내와 자녀들이 고가의 미술품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최모씨를 상대로 소유권 확인 소송을 진행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법원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압류가 진행되긴 했지만, 체납자의 재산의 소유권을 밝히기도 쉽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실제로 지난 4년 동안 2만 9천 명이 세금 체납액에 대하여 소멸시효를 완성하였고, 증발된 세금의 총액은 6조 4천억원에 이릅니다. 이는 국세만을 계산한 것이며 지방세까지 더하면 금액은 더 커지겠죠.
고액 체납자가 많아지자, 정부에서는 3년 전 고의 체납자를 최장 30일 동안 유치장에 감금할 수 있는 법인 ‘고액·상습 체납자 감치 제도‘를 제정하였지만, 고의를 밝히기도 어렵고 유치장에 감금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압력이 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고액 체납자가 많이 늘어난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납세자는 2천 2백만 명에 이릅니다. 국세청 직원 2만명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죠. 국세청 직원 한 명이 평균 1296건의 체납 건을 담당해야 하는 현실인 것이죠.
우리나라의 행정 전산화는 세계 193개국 중 3위에 해당할 정도로 고도화 되어있습니다. 그럼에도 인력을 요구하는 일이 많기에, 체납 처리가 쉽지만은 않아보입니다.
맺음말
미국의 국세청 직원을 뜻하는 단어인 ‘IRS‘ 이 단어 또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들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영향력이 큰 조직이라는 방증이기도 하죠.
우리나라의 국세청은 아직 그 정도의 권위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조세제도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정치인들이 사회적 합의도 없이 다수당의 조직력을 앞세워 하루아침에 제정해 버리는 세법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세법이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느껴지는 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오래되고 낡은 세법을 현실에 맞게 고칠 생각은 안 하고, 정치적으로 유리한 세법만 새로 제정하려고 하는 미성숙한 정치인들이 있는 한, IRS 같은 권위도, 조세범의 감소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